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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실존주의 사상가입니다. 그의 철학과 실존주의, 정치활동에 대해 알아보고, 현대의 철학과 문학에 남긴 그의 유산 및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철학과 실존주의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은 실존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존재하고 그 후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고 하여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라고 믿었으며, 이는 개인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인간의 삶에 고유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고독하고 자유롭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사르트르는 진정성과 개인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개인이 자신의 삶과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즉, 개인은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와 같은 외부 요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샤르트르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고 외부 요인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정의되도록 허용하는 행위인 '나쁜 믿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나쁜 믿음'은 선택에 있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부정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데 있어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이 외부 환경에 의해 미리 결정되거나 결정된다고 믿도록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이는 비진실성과 자기기만으로 이어지며, 사르트르는 이를 인간의 일반적이고 위험한 경향으로 보았습니다.

 

 

정치 활동과 견해

장 폴 사르트르는 매우 영향력 있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로 정치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는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했지만 소련과 소련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습니다. 사르트르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알제리 독립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반식민주의 투쟁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활동 외에도 그는 자유의 중요성과 결정론적 사고를 지양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르트르의 정치적 견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지만, 그는 개인의 권리와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정치활동가였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 정의에 대한 그의 헌신은 평생 동안 변함없는 주제로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정치적인 견해는 그의 철학적인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현대 철학과 문학에 대한 사르트르의 유산

장 폴 사르트르는 현대 철학과 문학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철학에서 그는 실존주의와 현상학에 기여한 것으로 유명한데, 실존주의는 앞서 말했듯이 개인의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책임을 강조한 이론입니다. 또한 사르트르는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진정성의 개념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자유, 진정성, 인간 존재와 같은 주제를 탐구한 희곡, 소설, 철학적 에세이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학에서 철학적 주제를 탐구한 소설, 희곡, 에세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타인은 지옥이다'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연극 '닫힌 방'과 세상에 내재된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실존적 위기와 씨름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구토'가 있습니다. '존재와 무'와 '닫힌 방'은 의식, 자유, 개인의 책임의 본질을 탐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소설은 인간의 조건과 개인의 자유와 진정성을 위한 투쟁을 탐구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식민주의에 반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등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글을 썼습니다. 사르트르의 유산은 기존의 사고에 도전하고 개인주의와 진정성을 옹호하는 동시에 권력과 억압 체제를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현대 문학, 철학, 사회사상 등 다양한 분야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생애

장 폴 사르트르는 190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사촌이었던 어머니의 손에 자랐습니다. 그의 외가 쪽 집안이 프랑스 부르주아 지식층이었으므로 그는 어릴 때부터 깊이 있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르트르는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에콜 노르말 슈페리어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29년 철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 이후 1931년부터 1936년까지 리세 뒤 아브르를 비롯한 여러 리세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고등과학연구소에서 공부하며 첫 소설인 '구토'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르트르는 프랑스 군에 징집되어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고, 나중에 석방되어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프랑스 지성계의 저명한 인물이 되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는 철학 운동인 실존주의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을 거부했으며, '상을 포기하는 것보다 상금을 포기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프랑스 지식층 답게 골초였으며, '담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까지 남길 정도였습니다. 1973년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저술 활동을 중단했으며, 1980년 지병인 폐기종이 악화되어 75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