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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교사였으며, 유교사상의 창시자인 공자의 사상과 생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상
공자의 사상이 담긴 것으로 유명한 '논어'는 그가 직접 적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공자의 철학을 정리해 놓은 듯한 논어의 첫 세문장은 학창 시절에 누구나 배웠던 문장입니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有朋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의 가르침과 지식, 인, 예, 충성, 미덕에 대한 철학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관통하는 원칙이었습니다. 공자가 창시한 신념이자 철학인 유교는 중국의 문화와 사회 전체를 아우르며 그 토대가 되었습니다. 자비, 올바른 행동, 자기 수양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개인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유산은 중국 예술과 문학에서 현대 비즈니스 관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교 사상의 핵심은 '인'의 사상입니다. 인에 대해 공자는 여러 가지 설명을 했습니다. 극기복례가 곧 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감이 곧 인이다'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인은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인간이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서 인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상호 간의 이해와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공자는 교육과 자기 계발,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믿었으며, 개인의 정직, 연장자에 대한 공경, 통치자에 대한 충성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공자의 교육 목표는 국가와 사회를 이끌 통치자로서 인격의 완성체인 군자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나라의 정치에 참여할 능력과 자격에 어울리는 인격과 능력,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인재의 육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또한 통치자가 하늘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며, 바른 통치를 하지 않으면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천명의 개념을 믿었습니다. 그는 개인이 더 나은 시민이 되고 사회 전체의 복지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적, 도덕적으로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기초한 유교는 중국의 지배적인 철학과 신념 체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바른 신념도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듯이 유교가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 장남 이외의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족쇄가 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생애
공자는 기원전 551년 중국 산등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숙량흘은 딸만 아홉을 두어 후처에게서 아들을 얻었으나 그 아들에게 장애가 있자, 노년에 10대의 안징재에게서 공자를 낳았습니다. 공자의 이름은 구, 자는 중니입니다. 세 살에 아버지를 열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은 공자는 젊은 시절에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으며, 서른 살이 되어서야 관직도 얻었습니다. 서른다섯 살에 노나라에 난이 일어나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을 하자 기원전 517년 공자도 함께 떠났다가 2년 후 귀국하게 됩니다. 이후 양호가 정권을 잡자 공자는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다가 3년 후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게 됩니다. 기원전 500년 노나라와 제나라의 회담 때 공자가 의례를 맡아 뺏긴 땅을 돌려받으며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삼환씨 세력을 타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제자들과 함께 고국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그의 나이 예순여덟 살에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며 문헌을 정리하는데 전념합니다.
공자의 제자는 알려진 사람들만 해도 70명이 넘으며, 이들 중 자로, 염유, 유약, 안회, 중궁, 자공, 자하, 자유, 증자 등이 특히 유명하며,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증자를 이었고,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자하와 자유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일흔세 살이 되던 기원전 479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