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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문장이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기독교 신자라면 뭔가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말을 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과 생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상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있어 철학은 고상하고 어렵기만 한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상세계에 있어 철학은 자신을 꾸미기 위해 필요한 장식의 요소일 뿐 진정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에 대해 비판하며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고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는 항상 자기 자신이고자 했고 자신을 기만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그는 절대 진리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믿었고,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현실의 세계에 대해 탐구를 해 나갔습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프리드리히 니체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믿음의 대상인 신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했습니다. 종교는 모든 사람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거짓 위안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신에 의해 현실을 미래에 천국과 지옥으로 가기 위한 통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신이 죽었다고 한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적인 존재는 사라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현실주의적인 철학자였습니다. 신이 사라지고 없다면 그동안 신을 따랐던 사람들은 방향을 잃게 됩니다. 나를 이끌어줄 누군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죽었다는 말은 허무의 세계가 도래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신이 죽었으므로 신에게 의지하는 미래의 세상이 아닐 현재 살아가는 삶에서 의미를 찾고 현재를 누려야 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 표현을 다르게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고 이어령 교수의 생전 강연에서 그는 니체의 발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독일어 원문에서는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죽어가고 있다'라는 현재형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을 살릴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이 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신이 죽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신이 죽었으므로 신에게 제약을 받지 않고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고 이어령 교수는 '신에 의해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던 인간이 신의 죽음으로 인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며, 그 자유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이 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살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경제가 발달한 유럽은 많은 사람들이 목표도 비전도 없는 삶을 살고, 신에 대해 부정하는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가 믿고 있는 절대 가치는 가짜이고 의미가 없다고 드러나는 순간 신은 죽고 그 허무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가장 존경한 것이 프리드리히 니체라고 말했습니다. '신이 죽으면 참담하고 그것을 희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조인이며 인간을 사랑하고 목숨을 사랑하는 이가 예수님이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델로 삼았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으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자라투스트라에 대해 그가 써낸 이 책은 수많은 은유와 화려한 문체로 기록된 책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자라투스트라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머물렀던 동굴은 세상을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으며, 이렇게 높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높이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굴은 독수리의 둥지를 닮아서 독수리가 천적들이 자신의 둥지에 오지 못하도록 절벽에 둥지를 트는 것처럼 자라투스트라의 동굴도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자라투스트라는 동굴의 높이가 높은 만큼 깊은 곳을 향해서도 여행을 해야 하고 모든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뿐만 아니라 깊은 계곡과 물속에도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신은 죽었으므로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나가야 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국가가 신을 대신할 새로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시원한 그늘에서 관망하고 있으며 나서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으며, 하나의 일반적인 상식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는 양말을 제조하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른 점은 학자가 만드는 양말이 정신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생애

프리드리히 니체는 앞서 언급했듯이 1844년 독일 작센 지방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연이어 여동생과 남동생이 태어났으나 1949년과 1950년 아버지와 남동생이 연달아 사망한 후 가족은 할머니가 사는 나움부르크로 이사했습니다. 1864년 어머니의 뜻에 따라 본 대학의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에 신학공부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리츨 교수가 동료 교수와 다툼 끝에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자 따라갔습니다. 이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고 거기서 프로이센 시민권을 포기한 후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는데 필요한 요건을 채우지 못해 평생 무국적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1879년 건강을 이유로 바젤대학교에서 퇴직한 후 유럽을 돌아다니며 집필활동에 몰두하였고,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신을 잃은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 마지막 10년을 보내고 1900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